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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장례 문화

장례

by 토니모니 2023. 5. 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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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장례 문화

백제는 기원 전후 무렵 고구려, 부여의 이주민들이 한강유역에 세운 나라로서 낙랑이 멸망한 4세기 초부터 급격히 발전하였으나, 4세기 말경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세력으로 공주로 도읍을 옮기게 되고 538년 다시 부여로 수도를 세 번이나 옮겼기 때문에 세 군데에 고분 중심지가 있으며 각기 시대적인 변천을 보이고 있다. 또 기록에 의하면 '부모나 남편이 죽으면 3년 동안 상복을 입는다. 그 나머지 친척들은 장사만 지내면 이내 상복을 벗는다'라고 하였다.

1) 한성시대

한성시대의 백제 고분들은 크게 적석총과 봉토분의 둘로 갈라지며, 봉토분은 다시 석실분, 석곽분, 토광묘, 옹관묘 등으로 구분된다. 적석총은 석천동 일대 평지에 축조된 것들만 확인되고 있는데, 이들 분묘는 집안현 고구려 고분과 평북 자성강 하류 유역에 있는 분묘들과 축조방법이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적석총 묘제가 전래되어 백제 초기 지배층 묘제로 형성된 듯하다.

토광묘는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아무런 시설 없이 피장(被葬)자를 매장하는 순토광묘와 목관, 목곽을 갖춘 토광묘 등 두 형식이 있다. 이 지역의 토광묘는 대개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목관을 매장하고 때로 독널을 곁들여 묻는 것으로 봉토에는 돌이나 기와를 표토 가까이에 한 겹 덮은 것이 특색이다.

석실분은 남벽에 널길을 설치하고 위를 좁게 쌓아올려 한 장 또는 몇 장의 천정 돌을 얹어 끝내는 형식과 합장이 가능하게 구축되었다. 한성시대의 무덤 양식은 토광묘, 석곽묘 같은 묘제에 고구려식 적석총과 합장이 가능한 석실분이 퍼져 들어왔으며, 입지에  있어서도 처음 고구려식 평지 무덤에서 출발하여 남으로 내려갈수록 언덕으로 올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 웅진시대

수도를 공주로 옮기면서 고구려식 적석총은 없어지고 "ㄱ"자 형 석실묘와 장방형 석실묘가 한성시대에 이어서 계속 축조되고 중국계 전축분(塼築墳)이 새로 건설되었다. 공주 부여 지역의 장방형 석실분은 지하에 땅을 파고 그 안에 판석으로 장방형의 묘실을 만들고 남쪽에 역시 판석으로 갱도를 부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사비시대

부여지방에서는 "ㄱ"자 형 석실은 없어지고 연도 달린 상자형 석실뿐으로 되며, 그것이 전북일대에 퍼져 나가지만 감원, 임실 등 소백산맥 접근 지역에서는 산맥을 넘어온 가야식의 석곽묘들이 나타난다. 특히 능산리 동하총의 경우는 한 벽이 하나의 판석으로 상자형 석실로 벽면을 물갈이한 후 직접 사신도를 그렸다. 이외에 옹관묘가 보이며, 특히 영산강 하류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대형 옹관은 한 봉토 안에 합구식 옹관 여러 개를 합장하고 관 밖에 토기류를 부장하고 있다. 백제묘제를 통관하면 횡혈식 석실묘로 고구려와 통하고, 공주지방에 터널형 전축분 같은 남조묘제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독립된 매장 법으로 옹관묘가 영산강 하류에 모여 있는 것도 백제 묘제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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