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야 장례 문화

카테고리 없음

by 토니모니 2023. 5. 24. 11:33

본문

728x90
300x250

가야 장례 문화

가야 고분은 원삼국 시대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야지역에서 조영된 고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분포는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으나, 지리산 넘어 남원, 임실 등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가야 고분은 기본적으로 원삼국시대의 여러 무덤 형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각 지역마다 특색을 가지고 변천하고 있다. 고분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형은 대개는 남쪽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구릉 지대의 산마루와 경사진 기슭이다.

가야 고분의 종류

가야고분에는 토광묘, 옹관묘, 석관묘, 석곽묘, 석실묘 등이 있다. 토광묘는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체를 넣은 무덤 형식으로 주로 김해, 부산 등지의 낙동강 하류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매장 방식은 청동기 시대 말기에서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고 가장 보편적인 장법으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옹관묘는 나무로 짠 관 대신 독 하나를 단독으로 또는 두개를 이어 붙여 사용한 것으로 낙동강 하류의 김해, 부산, 창원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이들 옹관묘의 형식과 배치를 보면 합구 옹관식과 유개단관식이 있고, 예안리 옹관묘처럼 단일 묘제인 단순 옹관묘와 석곽 내에 옹관을 넣은 특이한 형식이 있다. 

옹관묘

옹관묘의 주된 위치는 단장제와 주된 묘곽에 병설하는 배장제(培葬制) 등으로 구분된다. 석관묘는 판석을 네모지게 조립하여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넣어 매장하는 무덤으로 묘의 구조와 형태는 관의 한쪽에 칸을 지어 부장용 공간을 마련하는데, 머리 부분이 넓고 발치쪽은 좁은 두광족협(頭廣足狹)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의 전통을 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예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예안리 고분군, 창원 삼동을 들 수 있다. 

석관묘

석관묘란 목관이나 석관의 외관이란 뜻으로 판석이 아닌 할석으로 매장부 네 벽을 쌓고 두꺼운 판석 여러 매를 잇대어 뚜껑으로 덮은 무덤을 말한다. 이러한 석관묘는 석상분에서 변화, 발전한 지석묘 이래의 전통이며 토광묘와 함께 경상도 지방에 깔려있는 기본 묘제라 할 수 있다.

석곽묘

석곽묘는 구조상 시신을 위로부터 매장하고 뚜껑을 덮는 수혈식과 옆으로 매장하고 그 매장 한 한쪽 입구를 밖에서 막아버리는 횡구식으로 구분된다. 수혈식 석곽묘는 신라지역이나 백제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무덤양식으로 특히 가야지역에서는 분포지와 수량으로 볼 때 가장 대표적인 묘제라고 볼 수 있다. 석곽묘는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창녕, 고령, 경산 등에서는 봉분 기슭 주위에 호석을 둘러주는 경우가 많고, 구암동과 창년에서는 석곽의 윗면 전체를 강돌로 덮어 준 것이 발견되고 있어 신라의 적석 목곽분과의 관련을 살필 수 있다. 고령 지산동에서는 석곽묘와 석관묘들이 여러 개 발견 되었는데, 이 석곽묘들은 순장한 것들로 밝혀졌다.

석실묘

석실분은 일반적으로 갱도가 달린 횡혈식 고분을 가리키는 말로서 횡혈식 석실분은 원칙적으로 부부합장을 위한 가족묘이다. 가야지역에서는 외래적인 묘제로서 백제의 영향을 받은 묘제라고 보여진다. 이 석실분들은 대체로 평면 방형 또는 장방형의 현실을 부정형의 할석을 쌓아 올리고 두 장벽을 기울게 하여 터널 형이나 돔형으로 하고 그 위에 천장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연도가 중앙에 있는 것, 한쪽 벽에 치우쳐 있는 것이 있다. 이러한 석실분은 고령 고아동, 김해, 양산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 중 고아동의 석실분은 연화분이 그려져 있는 벽화 고분이다. 이러한 다양한 묘제를 가진 가야 고분은 대체로 석관묘 > 석곽묘 > 석실묘 순으로 변천하는데, 각 고분에는 조영시기를 대표하는 각종 유물이 부장되어 있어 가야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출처 : 보건복지부 장례지도사 표준교육교재

300x250